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단어가 바로 *초심*이다.

초심은 말 그대로 "처음먹은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초심을 잘 지키라"는 뜻은 처음 먹은 마음을 잊지말고 잘 지키라는 의미이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을 빌리자면 처음 들어온 백화점 직원은 매장에서 손님이 얼마냐고 물어보면 막 뛰어와서 친절하게 가격을 예기해 주지만 3년정도 된 직원들은 "거기 써 있잖아요"라고 한다.

신부님들은 한성당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3-5년마다 근무지를 옮긴다. 한 성당에서 오래 근무를 하다보면 지역주민과 너무 가까워져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 우스께 소리로 신임교수가 부임하여 학생들이 인사를 하면 처음 1-2년간은 서로 고개를 숙이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다가 3년이 지나면 목에 깁스를 한 것 처럼 무표정에 고개만 까딱한다고 한다. 

행정직원들도 처음에 들어오면 전화한통이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확인전화까지 해 주지만 1-2년이 지나면 3-4번은 전화를 해야 그 일이 진행이 된다. 

동료들도 처음에는 서로 예의를 지켜가며 지내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되면 (즉, 상대방의 간을 다 보면) 서로 존중감 없이 행동을 한다.

"작심삼일"을 포함한 무수한 성어들이 초심과 관련이 깊다.  

2005년 9월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수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 박사를 갓 졸업하고 무시무시한 미국의 정년보장제도(테뉴어)에 대해 여기저기서 들은터라 꽤나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일상은 2009년 8월 한국에 귀국하기 전까지 아침 8시까지 출근하여 5시정도에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경에 학교에 다시가서 저녁 11시까지 연구를 하다가 집으로 오고 토요일 일요일은 오전 9시정도에 출근하여 오후 6시경에 집에 오는 그런 생활에 연속이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저녁 회식이 없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같다. 어쨌던 나는 교수생활 처음 4년을 그렇게 빡시게 보냈다. 지금 내 책상 앞에는 커다랗게 한자로 "초심"이라고 적혀있다. 초심이 점점 힘을 잃어 가는 것 같아 두려워 매일 쳐다보며 초심을 지키게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원생들도 처음에 연구실에 들어오면 교수도 놀랄만큼 일을 열심히 한다. 그렇다 한 학기가 지나면 처음의 75%가 되고 두번째 학기가 시작되면 처음의 50%가 되고 그렇게 초심을 잃어간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처음과 같은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너무 처음과 똑 같아도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백화점 직원이 고객에게 프로의식을 가지고 친절히 대하고 정년이 얼마남지 않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인사를 정겹게 받아주고 5-6년이 지난 행정직원들도 나태해지지 않고 오히려 경험을 되살려 일을 신속히 처리하고 동료들끼리도 서로 존중감을 지닌채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정말 그런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세월과 경험을 무기로 하여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초심지키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