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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

AI 시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더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

송길영 작가님의 "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 배움의 재정의" 강연을 들었다. 송 작가님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고, 아름다운 고려대학교 인문계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좋은 강연을 들으니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여러 사례와 흥미로운 슬라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졌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과거에는 근면함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정해진 일을 빠짐없이 수행하고, 같은 기준 아래에서 더 높은 점수와 더 많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았다. 하지만 AI의 등장으로 이러한 ‘균일한 성실성’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으로 남기 어려워졌다. 정해진 일을 AI가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오래 반복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만의 차이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송 작가님의 표현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멋지게 흐트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생기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 취향과 선택이 쌓여 다른 사람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원본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본이 무한해질수록 원본의 아우라는 상승한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생성형 AI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분석까지 한다. 그럴듯한 결과물을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될수록, 그 뒤에 있는 사람의 경험과 관점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실제로 무엇을 경험했는지, 어떤 질문을 오래 붙들고 고민해 왔는지가 결과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AI의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의 진짜 경험과 고유한 관점은 오히려 더 귀해질지도 모른다. 또 하나 인상적인 내용은 “지금의 조직은 목적지가 아니라 도움닫기다”였다. 우리 세대에게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은 삶의 중요한 목표였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그 조직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성공의 전형적인 경로였다. 하지만 조직은 내가 세상과 만나고, 역량을 키우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어야 한다. 결국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가?”를 넘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지가 학생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성적과 자격증을 얻는 것만으로 교육의 목적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은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며,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탐색하는 도움닫기의 공간이어야 한다. “방향 없이 분주한 것은 수고의 반댓말”이라는 말도 오래 남았다. 바쁘게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가는 분주함은, 어쩌면 불안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교육에서도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가?”에 앞서 “학생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AI가 중요해졌다는 이유로 모든 학생에게 AI 과목을 필수로 이수하게 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배워야 할 의무를 하나씩 더하는 것이 과연 좋은 교육일까. 강연에서 언급한 ‘깜지’의 사례도 같은 맥락으로 들렸다. 무엇인가를 많이 시키면 교육을 충분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 교육의 충실함을 과제의 양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학생에게 자기 배움의 주도권을 얼마나 돌려주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 지금보다 더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경로만으로 그들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교수의 역할 역시 지식과 경험을 전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온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600원 vs. 7,000원—12배 비싼 아이스크림”, “19,900원의 마법이 끝난다, AI는 미혹되지 않는다”, “스마트 냉장고의 꿈은 검은 비닐봉지 앞에서 멈췄다”… AI가 가격을 냉정하게 비교하는 시대에도 사람은 여전히 600원짜리 대신 7,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산다. 사람의 선택에는 기능과 가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과 이야기, 분위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무리 똑똑한 냉장고라도 사람이 음식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넣는 순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보통 그런 봉지 안에 몸에 좋은 음식이 들어 있는데 정작 스마트 냉장고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났다. 기술이 가정하는 생활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 사이의 간격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로봇이 일하는 뷔페, 발레를 배우는 파인다이닝”이라는 대비도 기억에 남는다. 효율성이 중요한 서비스에서는 로봇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반면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경험의 일부인 곳에서는 더욱 섬세한 인간성이 요구될 수 있다. 동작 하나, 말투 하나, 접시를 내려놓는 모습 하나까지 고객의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도 더 구체적이고 까다로워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송 작가님이 제시한 “직접 한다, 발행한다, 이유를 본다”는 세 가지 원칙이 와닿았다. 직접 해 보고,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세상에 내놓으며, 왜 이 일을 하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했는가. 왜 그것을 하는가. 직접 해 보았는가. 세상에 내놓았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사람의 역량을 더 잘 보여 줄지도 모른다. 강연을 들으며 ‘수고’라는 단어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고를 노동시간의 총량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송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면, 수고는 ‘사고와 시도의 총합’에 가깝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뒤 직접 시도하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강연 초반에 들었던 “근면함이 끝난다”는 문장도 강연이 끝난 뒤에는 다르게 다가왔다. 근면함이 향해야 할 대상이 바뀌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남보다 더 많이 외우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정해진 일을 더 오래 반복하는 데 쏟았던 성실함을 이제는 자신의 질문을 오래 붙들고,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원본을 만들어 가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도하는 대학원생들만이라도 AI 시대에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되, 그것만으로 모든 가치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의 시간을 희생하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배려, 동료의 시행착오를 함께 안타까워하는 마음, 내가 하기 싫어도 함께 이기에 이를 감내하는 태도 역시 소중하기 때문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이라는 말로 대표되곤 하는 산업공학의 지향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무조건 옵티말(optimal)만 외치지 말자. 무엇을 최소화하고 무엇을 최대화할지에 앞서, 누구를 위한 효율이며 어떤 삶을 위한 최적화인지를 물어야 한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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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

정신건강

정신수양을 위해 좋은 것은 많지만 그중 명상이 대표적이다. 명상의 기본은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고 다른 생각이 사라진 상태,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명상의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쉽게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온갖 생각과 걱정, 잡념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훈련한 수행자라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너무 답답해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명상의 형식보다 본질을 생각해 보자. 명상의 본질이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반드시 눈을 감고 고요하게 앉아 있어야만 명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자연스럽게 호흡에 집중하게 만드는 행위 역시 충분히 명상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영, 러닝, 등산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수영이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은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제한된 순간에 숨을 쉬어야 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싫든 좋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숨을 쉬기 위해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러닝도 비슷하다. 천천히 달릴 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숨소리와 호흡만 느끼게 된다. 등산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함께 올라가는 사람들과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지만, 경사가 가팔라지고 숨이 차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든다. 각자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한 걸음씩 올라가게 된다. 그러다 정상에 도착하거나 내려오기 시작하면 다시 이야기가 많아진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다 내려와 다리가 지칠 무렵이면 또다시 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만 명상은 수영이나 러닝, 등산과는 다른 장점도 있다. 운동은 호흡이 가빠지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잡념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반면, 명상은 잡념이 떠오르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이나 현재의 감각으로 주의를 돌리는 연습을 한다. 즉, 운동이 잡념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데 강하다면, 명상은 잡념이 생겼을 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다루는 능력을 길러 준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특별한 장소나 체력이 필요하지 않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것도 명상만의 장점이다. 우리가 수영이나 러닝, 등산을 하고 난 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단순히 몸을 움직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육체적인 운동과 함께 일종의 정신적인 휴식도 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동안 호흡과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평소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걱정과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좋은 휴식은 잡념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잡념을 생각할 틈이 없도록 다른 무엇인가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완전하게 잡념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잠일 것이다. 잠든 동안에는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정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이다. 하지만 잠을 제외하고 깨어 있는 시간에도 우리는 자신만의 잡념을 잊는 행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수영일 수도 있고, 러닝이나 등산일 수도 있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계단 오르기, 자전거 타기, 팔굽혀 피기, 플랭크(plank) 같은 다른 활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에서 벗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정신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잡념을 잊게 해 주는 행위를 일상 속에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짧은 명상을 더해,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잡념이 찾아왔을 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다루는 연습까지 한다면 더욱 완벽한 정신적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몸과 정신이 망가진 뒤에 후회하기보다, 아직 건강할 때 운동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은 건강한 사람에게 주기에는 너어~무 아까운 선물이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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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

공감능력

요즘 MBTI의 F와 T는 사람의 성향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재미있는 대화 소재로 자주 활용된다. 특히 T는 감정보다 논리와 사실을 중시한다는 특징 때문에, 누군가의 고민이나 어려움에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두고 “역시 T라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T 성향과 실제 공감능력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농담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그만큼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감능력은 단순히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능력이 아니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저 사람에게는 왜 이 일이 중요할까?’, ‘저 사람에게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며 나의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시선으로 때때로 상황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감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즉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나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만이나 짜증으로, 때로는 침묵이나 무관심으로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지금 위로를 원하는지, 해결책을 원하는지, 가만두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원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역시 중요한 공감능력이다. 결국 좋은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헤아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자연스럽게 남 사정보다 나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보다 내 경험과 기준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어쩌면 공감이 어려워진 것은 사람들이 이기적이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헤아릴 여유가 부족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감능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은 선천적인 성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자신이 직접 실패나 좌절을 경험하면서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는 폭은 넓어질 수 있다. 특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과 생각을 접하는 과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준다 (이는 여행과 독서를 통한 직간접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공감능력을 기르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판단보다 이해를 먼저 하는 습관’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서 쉽게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까?”로 조금만 바꾸어 보면 전혀 다른 시각이 열린다. 행동의 옳고 그름에 동의하는 것과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Why)를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공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공감의 출발점이다. 공감은 거창한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해결책부터 제시하기보다 끝까지 들어주는 것, 내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감정을 단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도 한 번쯤 상대방의 자리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상대방의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와 필요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더해진다면 공감의 깊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런 작은 습관이 반복되면 공감은 단순한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능력이 된다. 결국 공감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MBTI가 F인지 T인지는 하나의 성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유형인가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이다. 공감능력은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배우고 연습하며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어쩌면 메마르고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AI시대에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남보다 앞서가는 능력뿐 아니라, 잠시 멈추어 옆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행복은 상하(上下)가 아니라 좌우(左右)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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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

대체 불가능한 사람

내가 처음으로 해본 아르바이트는 예식장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이었다. 주로 묵직한 뚝배기에 담긴 갈비탕을 손님들에게 나르는 일이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데다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해서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꽤 힘들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받은 일당은 2만 원이었다. 내 힘으로 처음 번 돈이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2만 원을 보여드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부모님께서는 고생했다며 웃으셨고, 처음으로 돈을 벌어온 아들이 나름 대견하신 듯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방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물으시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날 한 일이 분명 힘든 일이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젊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도 받을 수 있는 돈이 2만원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이 얼마나 힘드냐와 그 일에 얼마의 보수가 주어지느냐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이 쉽게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가는 크지 않을 수 있다. 네 시간을 단순히 돈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능하다면 그 시간의 일부라도 다른 사람이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데 썼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해서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어왔는데, 왜 아버지는 돈을 벌었다는 사실보다 ‘대체 가능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는지 살짝 서운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말씀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은 노력의 양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일하고 극한 환경에서 누구보다 힘들게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보상은 때로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희소한지,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얼마나 쉽게 대신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일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의 가치가 낮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날 예식장에서 내가 했던 일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수고가 결코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은 직업의 귀천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내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당장의 보상을 위해 시간을 쓰면 그날의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어떤 시간은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훗날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사색하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자신만의 판단력과 전문성을 쌓는 시간이 그렇다. 그런 시간들이 쌓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넓어지고, 다른 사람이 쉽게 대신하기 어려운 나만의 영역이 생긴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무엇을 위해 왜(Why) 열심히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날 내가 번 2만원은 오래전에 사라져 어디에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2만원과 함께 배운 생각은 아직도 남아 있다.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손에 쥔 날, 나는 돈을 버는 법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내 시간을 계속해서 누군가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에만 쓰지 말 것.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능력과 판단력을 갖추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 그리고 언젠가는 단순히 많은 시간을 일해서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맡길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점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면서 살지, 눈 앞에 이익만 좇으면서 살지 너무 늦지 않게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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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

과정과 결과

과정과 결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결과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평가한다면, 실패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마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0, 성공을 100으로 단순히 나누기보다는, 성공과 실패를 0과 100 사이에 놓인 연속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50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해보자. 49와 51은 결과만 놓고 보면 각각 실패와 성공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 둘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49에 이르는 과정에서 얼마나 노력했고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지에 따라, 그 실패는 51의 성공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실제로 49로 실패한 사람이 51로 성공한 사람보다 결국에는 휠씬 더 잘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목표를 향해 기울인 노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교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던 노력은 그대로 남는다. 비록 그 노력들이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후 전혀 다른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한 번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이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완전한 실패라기보다 아직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하나의 지점에 가깝다. 30에서 끝난 경험도 다음에는 40을 가능하게 하고, 49에서 멈춘 경험은 언젠가 50을 넘어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반드시 같은 목표에 사용될 필요도 없다. 한 분야에서 쌓은 노력과 경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과정만 중요하고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결과는 분명 중요하다.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게 해주고, 노력의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와 많은 노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실패를 정당화하는 태도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무엇이 부족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기존의 방식이나 방향을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정과 결과를 연결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결과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평가하게 하고,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다음 결과를 바꾸어 놓는다. 성공은 하나의 결과이면서 또 다른 과정의 시작이고, 실패 역시 끝이 아니라 다음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의 일부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가볍게 여기자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패의 원인을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얻은 것까지 실패로 규정하지는 말자. 어쩌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매번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가 다음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성공한 경험에서는 자신감을 얻고, 실패한 경험에서는 배울 것을 찾아 다음 시도에 반영할 수 있다면, 성공과 실패는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결국 더 나은 다음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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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

나의 본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때로 기쁘고, 때로는 슬프며, 때로는 화를 낸다. 그렇다면 나는 기분이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기분이 나쁜 사람일까. 어떤 때는 한없이 인자하지만, 또 어떤 때는 쉽게 분노한다. 그렇다면 나는 인자한 사람일까, 아니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나는 계속 변한다. 주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 그렇다면 변하는 이것이 정말 '나'일까. 변하지 않는 나는 무엇일까. 내가 빨간색을 빨간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내 눈이 본래 어떤 색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색이 나타나면 그저 색으로 알아차릴 뿐이다.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본래 특정한 소리를 붙잡고 있지 않기에 소리가 나면 그것을 들을 수 있다. 부러움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사람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움 또한 그렇다. 그 사람을 알기 전에는 미워할 대상도 없었다. 결국 부러움도 미움도 어떤 조건이 갖추어질 때 생겨나는 감정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대부분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 조건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고, 조건이 사라지면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두렵거나 누군가가 부러울 때, 그 감정을 밀어내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느껴 보고, 그 감정이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는지를 차분히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그 감정은 실체를 잃고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는 원래부터 흔들리지 않던 내가 남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더 이상 부러움도 미움도 없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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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6.05

학습을 해야하는 이유

질문은 모를 떄 하는 것이 아니라알 때 하는 겁니다. 모르면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AI 시대에서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호기심이 생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학습해야 합니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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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2026.05

주어진 일이 많다는 것

주어진 일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조직에서 잘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심신이 고되고, 스트레스도 있지만그래도 일이 없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가능한 편안히 받아들이고, 하나씩 묵묵히 해내다 보면 결국 그 시간들은 자신의 성장으로 남습니다. 바쁘다는 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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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6.04

익숙함 vs 새로움

익숙함은 나를 지켜주고, 새로움은 나를 바꿉니다.익숙함과 새로움을 몇 대 몇으로 살아갈지는내가 정하는 일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선택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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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26.04

대체 불가능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도 쉽게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과 차별화된 무기를 갖추는 일입니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스펙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Written by 김성범 교수님 김성범 교수님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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