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에게 외면당한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더 큰 고통을 겪는다. 라반은 야곱을 이용하고 억압하며, 결국 야곱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게 된다. 성경에서 라반은 종종 불신과 탐욕의 인물로 그려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도 라반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유 없이 나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나의 선의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존재들. 하지만 성경은 그런 라반과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를 단련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나를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히는 사람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의해 내 앞에 놓인 존재라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억울함과 분노가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라반은 아닐까? 혹시 라반 자신도 또 다른 라반에게 상처받고 있는 건 아닐까? 나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 역시 라반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는 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 않도록 돌아보고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건 상처를 어떻게 치유받을까가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그러니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돌려야 할 때다.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은 그런 삶을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라반에게 받은 상처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로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나부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누군가에게 또 다른 라반이 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