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3일 오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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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범 교수님
지난 8월 미국 LA에서 개최한 CASE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 비행기 안에서 잔잔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도 늘 마음 한구석에만 담아두었던 영화 두 편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바로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스파이크 존즈의 “Her”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샹룬과 신비로운 소녀 샤오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피아노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음악을 매개로 교감하며 점차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청춘의 순수함을 온전히 담아낸다. 하지만 샤오위는 늘 갑작스레 사라지고, 주변인들에게도 존재가 희미하다. 영화는 결국 그녀가 시간 여행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피아노 선율 속에 몸을 숨긴 그녀는, 음악을 통해서만 연결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오히려 사랑의 절실함과 애틋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청춘의 순간은 덧없고,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만, 진정한 감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내 마음 깊이 울렸다.
이어 감상한 “Her”는 전혀 다른 결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와의 이별로 상처받은 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 학습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존재와의 관계임에도 그 사랑은 진지하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따뜻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만다는 인간의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 성장하고, 수천 명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초월적 존재로 변화한다. 테오도르는
충격을 받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사랑은 상대의 독점이나 소유가 아니라, 교감과 이해 속에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장르를 지니지만, 나에게 공통된
느낌을 주었다. 바로 사랑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순수한 사랑을 그렸고, “Her”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감정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한쪽은
청춘의 애절함으로, 다른 한쪽은 기술 시대의 고독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둘 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름과 별을 바라보며, 나는 이 두
편의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삶의 성찰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학회 발표 준비와 연구 과제에
매몰되어 있던 나 자신이, 문득 더 삶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비행기의 목적지는 LA였지만, 나의 내면은 이 두 영화가 열어준 사유의 여정을 따라 훨씬 더 먼 곳으로 떠나 있었다. 사랑은 시간과 기술,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를 넘어서는 힘이며, 동시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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